장병문예 낙선작

우주 2010. 1. 17. 20:57

2007년 가을 어느 날에 적은 글이다. 당시 군복무를 하고 있던 나는 부대에서 주관하는 장병문예에 응모하여 포상휴가를 타낼 목적으로 이 글을 적었다. 결국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낙선하였다. 할당된 지면이 적어 긴 글은 제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설로는 응모할 수 없었고, 시나 꽁트, 짧은 수필 정도가 응모 가능한 장르였다. 당선되는 작품들은 대부분 교훈적인 내용을 듬뿍 담은 수필이었다. 그리하여 나도 그런 류의 글을 적어 제출하였다. 순수하지 않은 의도가 개입되어 있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거짓된 마음을 담지는 않았음을 밝혀둔다. 이하 그 전문이다.


지난 오월 말. 군생활에서 두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유격 훈련을 받았다. 오일의 훈련 기간 중 셋째 날인가 넷째 날이었을 거다. 훈련장에 올라가서 기구를 타기 전에 PT체조를 하고 있었다. 유격을 받아 본 사람을 알겠지만 유격 훈련 중에는 조교나 교관이 교육생들의 행동을 사소한 것 하나까지 철저하게 통제한다. 지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다가 걸리면 따로 분류돼 더 강도 높은 훈련이나 얼차려를 받기 마련이다. 지시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예를 들면, PT체조를 할 때 교육생들이 집중해서 하게 하기 위해 마지막 동작에는 구호를 붙이지 말라고 하는데 혹 누군가가 부주의하여 마지막 동작에 구호를 붙였다면 그도 지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PT체조를 할 때는, 하나의 동작이 끝나면 차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대기해야 한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PT 일번을 몇 회 반복해서 하고난 뒤였을 거다. 방탄헬맷 끈을 조금 헐렁하게 맨 상태에서 계속 뛰는 동작을 하다보니 헬맷이 심하게 비뚫어져 내 눈을 가렸고 매우 불편했다. 나는 부동자세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 불편해서, 그리고 이 정도는 참작해 주겠지 하는 마음에 손을 올려 헬맷을 고쳐 썼다. 그러다 조교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한 번만 봐달라는 의미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역효과가 난 모양이다. 조교는 뭐가 웃기냐며 화를 냈고 나를 열외시켜 PT 팔번 준비 자세를 취하라고 했다. PT 팔번 준비 자세는 양 팔을 벌리고 누워서 고개와 다리를 사십오도 정도로 들고 있어야 하는 매우 힘든 자세로 그 악명이 높다. 조교는 얼차려의 의미로 나에게 계속 그 자세로 있으라고 지시했다. 힘들었다. 고개가 계속 내려오고 다리는 자꾸 꺾였다. 화가 났다. 그냥 넘어가도 됐을 일을 왜 굳이 짚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거야. 조교는 꼭 교육생들한테 악감정이 있는 것 같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런 모욕을 준 저 놈(?)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 나는 땀을 흘리며 분노로 가득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길고 긴 - 힘들어서 실제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 - 시간이 흐른 뒤 얼차려가 끝났다. 여전히 화가 난 상태로, 다음 코스로 이동하려는 찰나였다. 조교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거기서 무언가 씁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조교의 입장에서 했을 법한 생각들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많은 수의 교육생을 통제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만일 통제에 따르지 않는 교육생을 보고도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그 교육생은 적당히 통제에 따르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판단을 하고 앞으로 또 통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또 그것을 다른 교육생들이 알았다면, 다음에 통제에 불응하는 누군가를 지적하여 조치를 취하려고 할 때, 누구는 봐주면서 왜 자기한테만 그러냐는 불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훈련 통제가 어려워 지고 훈련의 질마저 떨어질 지도 모른다. 조교의 입장에서 볼 때 나에게 얼차려를 준 일은 하나의 본보기를 보여 이 후에는 또 그렇게 통제에 불응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한, 훈련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적절한 조치였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계속 화가 나 있었을텐데.

다음은 낙하 연습을 위한 기구를 타는 코스였다. 계단 - 계단이라고 하기에는 좀 가파르지만 - 을 한 칸씩 밟고 올라가서 꼭대기에 도착하면 뛰어내리는, 그런 연습을 하는 코스였다.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유격"이라는 구호를 외쳐야 하고 꼭대기에 도착해서는 양 팔을 벌리고 서서 "유격대"라고 더 크게 외쳐야 한다. 목소리가 작으면 얼차려를 받기도 한다. 내 차례가 되었다. "유격"을 외치며 한 칸씩 올라가는데 "교육생, 목소리 더 크게 냅니다!" 하는 조교의 말이 들렸다. 평소의 성격대로였다면 거기에 반감이 생겼을테지만 좀 전에 했던 생각들 때문에 그런지 조교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있는 힘껏 목소리를 냈고, 꼭대기에 올라서는 낼 수 있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유격대"를 외쳤다. 그리고 뛰어내렸는데 조교가 열심히 했다고 칭찬하면서 열외해서 조금 쉬고 있으라고 했다. 원래는 기구를 타고 나면 PT체조를 해야 했다.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격 훈련을 받으면서, 잠시 사이에 불량 교육생이었다가 모범 교육생이 되는 경험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유격은 단체로 하는 훈련이다. 모두가 다 훈련을 제대로 받기 위해 각 개인들은 때때로 개인적인 욕구들을 자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훈련 전체가 엉망이 된다. 목이 마르다고 아무 때나 물을 마시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모두 제각각 행동하게 되고 단체는 그 목적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즉, 단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 잘 알고 있던 말이지만 나는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잘 모르고 있었나보다. 유격 훈련 중의 경험으로 그 참 뜻을 깨닫게 되었다.

군생활은 단체 생활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생활을 하는 각 개인들은 군대라는 단체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희생을 해야 한다. 사회에서는 허용되지만 군대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어떤 한 병사가 취침시간 이후에 잠은 안 오고 친구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 막사 밖으로 나가 전화를 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하자. 그 병사는 자기만 잠깐 나가는 것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는 탈영할 염려도 없으니 그러는 일이 괜찮다고 여긴다. 다만 당직사관에게 걸리지 않는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체를 보지 않고 개인적인 시야만 갖는다면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단체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 전체와 그 목적을 헤아리는 넓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자기가 그렇게 통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리고 그것이 걸리지 않고 무사히 끝났거나 암묵적으로 허용된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통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것은 곧 군기강의 해이로 이어진다. 조금 심각하게 부풀리자면, 그로 인해 우리 군의 전투력이 약화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군 본연의 목적마저 타격을 입게 된다.

군 조직과 국가를 위해서 우리 구성원들은 모두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군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가끔 불만을 가질지언정, 여러가지 통제와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아도 해야되는 일들 때문에 힘들지라도 모두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한명 한명 놓고 보면 보잘것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넓게 보면, 군대는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하고, 한 명의 군인은 그 구성원으로서 군대를 유지시키고 있으니 그는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본다.

후대까지 길이길이 남을 뛰어난 작품을 만든 예술가나 사회를 더 윤택하게 해줄 획기적인 발명품을 개발한 연구가를 사람들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은 위대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는 또 다른 종류의 위대함이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묵묵히 참고 견디는 삶의 위대함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스스로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신다.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낮추고 버리는 그런 희생이야 말로 진정한 위대함이 아닐까.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긍지를 갖고 매순간 즐겁게 일하고 생활하는 군인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군생활을 하면서 힘듦과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참고 견디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우리 국군 장병은 모두 위대하다.
Posted by m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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