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문제

우주 2017. 6. 24. 21:01

친일파는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생각을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친일파 타령이라니, 한때는 분명히 큰 문제였지만 이제는 충분히 희석된 과거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정말 얼핏생각한다면 말이다. 또는 친일파 문제에 사적인 이해관계가 걸려있어서 친일파 문제가 언급되는 것을 껄끄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암튼 이런저런 이유로 친일파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 문제는 매우 중요한 현안이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더 승승장구했다.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부유하게 살았다. 반면 독립운동가들과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사람들은 해방 이후에 그에 상응하는 예우 내지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들의 자손들은 궁핍하게 산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시민들은 이러한 세태를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의(正義)나 선()에 관한 회의(懷疑)감을 체화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의로움과 선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도 좋을 게 없다. 경제적인 보상은 당연히 없고, 그로써 명예를 얻기도 매우 어렵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는 정의와 선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조차 너무 헷갈린다는 것이다. , 한국인들은 자신들도 잘 모르는 사이에 정의와 선에 관하여 부정적인 가치관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사에서 그 가장 큰 원인은 친일파 청산을 하지 않은 것에 있다.

 

한국의 시민들은 정의와 선 앞에서 좌절하고 시나브로 정의와 선을 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정치적인 독재와 경제구조의 왜곡을 마주하면서도, 놀랍도록 큰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대체로 저항하지 않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왔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시민들이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어떤 행동, 특히 집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민 개개인들을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유도해 왔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한국 사람들의 내면에는 아직까지도 왕조시대의 관념이 이어져오고 있을 수도 있다. , 사회에 어떤 절대적인 권력이 있어야 하고, 국민들은 그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관념이 아직까지도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수도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무렵까지는 실제로 조선시대를 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는 왕조시대적인 관념이 현재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다.

 

복합적인 원인들 때문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정의와 선에 관한 가치가 절하되고 왜곡되어 있다. 부패가 만연해 있다. 무엇이 정의이고 선인지, 무엇이 부패인지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 사회이다. 나는 복합적인 원인들의 중심에는 친일파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확신한다. 많은 사람들은 정의와 선이 실현되지 않음을 목도하고 좌절하였다. 추구해야 마땅한 가치에 대하여 체념하고, 권력을 가진 자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도록 길들여졌다. 신분제도 속에서 체념하고 살던 왕조시대의 습성이 이어졌다.

 

그런데 다행히도 또는 놀랍게도 한국의 시민들은 최후의 보루는 지키고 있었다. 1960년의 4.19 혁명이 그러했다. 친일세력과 손잡은 독재정권에 대하여 시민들은 분노했고, 행동했다. 1970년의 전태일이 그러했다.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인간을 소외시키며 숫자에만 집착하던 권력자들에 대하여 한 청년은 분노하며 자신의 몸을 불살라 저항했다. 한 청년만의 분노가 아니었다. 이는 모든 노동자들, 나아가 시민들의 고통과 절망, 분노를 담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80년의 5.18 광주민중항쟁이 그러했다. 광주시민들은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살상을 목도하며 분노했고,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계엄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1987년의 6월 항쟁이 그러했다.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통해 탄생한 군부독재정권을 시민들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시민들은 민주화를 염원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2016년의 촛불집회가 그러했다. 시민들은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정권과 국정농단에 대하여 크게 분노했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은 마침내 대통령을 탄핵되도록 만들었다.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하고 이를 경험해 보면서, 나는 오랜 세월 억압되어 왔던 우리 시민들의 정의와 선에 대한 갈망이 뜨겁게 분출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첫 단추가 아직도 잘못 끼워진 채로 있다. 친일파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한 정의와 선에 대한 왜곡된 관념이 바로잡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질만능주의와 위악이 만연한 작금의 사회에서 정의와 선은 더욱 중요시되어야 할 가치이다. 나는 정의와 선이 궁극적으로는 물질적인 풍요와 인간답게 살 권리에도 큰 보탬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가 한국 사회의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m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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