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24

얼음 2017. 6. 25. 00:42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

흠뻑 젖고 싶어.

한없이 우울하고 싶어.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에 닿고 싶어.


눈물을 흘리고 싶어.

비를 내리고 싶어.

모든 것을 녹이고 싶어.

내가 너인지, 너가 나인지, 알 수 없었으면 좋겠어.


망가지고 싶어.

흐트러지고 싶어.

더러워지고 싶어.

어느 후미진 골목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싶어.


무너져 내리고 싶어.

하염없이 슬퍼하며 바닥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싶어.

지하에 숨어 지내면서 위에서 나는 빗소리를 듣고 싶어.

누가 나를 찾을까봐 두려워하고 싶어.


비겁하고 싶어.

거짓말을 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으면 좋겠어.

나는 단지 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뿐인걸.

나는 단지 도망가기 위해서 비겁한 것일 뿐인걸.


나는 아직 사라질 용기는 없어.

얼마 전 내가 아직 사라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절절히 알았어.

나는 그저 숨을 수밖에 없어.

흠뻑 젖은 채로 계속 숨어 있고 싶어.

Posted by m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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