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렇게

성냥 2007. 11. 10. 23:21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는 글을 잘 써내려가지 못한다. 대개 초고(?)는 공책에 연필로 쓴다. 무슨 목적을 가지고 쓰는 글이 아니더라도. 그냥 이렇게 소소한 글을 쓸 때 조차도 말이다.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아니, 어쩌면 많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나는 거기에 어느 정도의 부담을 느낀다. 쉽게 예를 들자면, 지금 나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짤막한 글 하나를 쓰기로 마음 먹었고, 이렇게 쓰고 있는데, 이것을 어느 정도 그럴듯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무겁고 진지한 사람이 그 반대 유형의 사람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무겁고 진지하면 문제다. 때로는 두뇌의 제어를 무시한 채 마음이 이끄는 대로만 행동하기도 하고, 그냥 (키보드가) 두드려지는 대로 글을 쓸 줄도 알아야 한다.

나중에는 다자이 오사무가 쓴 글 같은 글을 써보고 싶다. 그리고 예전 어느 날에는 존 내쉬를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군 입대를 하면서는 스스로에게 체 게바라의 마음을 이입하려고 했었다. 외국어를 공부해서 전혜린처럼 번역을 해보고도 싶다. 히로나카 헤이스케처럼 수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조영래가 한 것처럼, 어떤 한 사람의 삶을 발굴해서 후대에도 읽혀질 평전을 써서 남기고 싶다. 음악에 혼신을 다한 김현식을 동경한다. 요즘은 박민규라는 작가가 마음에 든다.

내가 지금 당장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는 생각되지는 않지만, 이제 선택을 위한 준비를 해야하고 조금 더 지나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오리라는 걸 안다. 예전에 어디선가 인생에서의 선택은 무언가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고를 수 있는 여러 길 중에서 하나만을 남기고 모두 포기하는 일이라고 하는 말을 본 기억이 있다. 나무에 가지치기가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도 한 가지에서의 큰 과실(果實)을 위해 안타깝더라도 무언가를 포기해야 함이 요구된다.

그리고. 요즘 너무 신경이 날카롭다. 사춘기 시절과도 비슷하다. 말 끄는 사람에게 채찍으로 얻어맞고도 호탕하게 허허 웃어넘겼던 안중근의 관대함이 생각난다. 내가 나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나니까 나답게 행동해야 하는 것임을.

그래서. 가벼워지고 무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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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성냥 2007. 11. 10. 15:42

심각하다. 자꾸 무언가를 잊어 먹는다. 예전에는 어땠는가. 이렇지 않았다. 우산을 잃어버렸다. 없어진 우산이 안타까운게 아니다. 잊혀지는 것들이 안타깝다. 안타까운 줄 조차 모르는 채 흘러가 버린 것들이 안타깝다. 다시는 잊지 않으리라는 확고한 다짐을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냥 이런대로 조금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 그 이상의 굳음은 가지지 못함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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