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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아침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의사가 자신이 의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기억에 남는 일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코너를 보았다. 삶과 죽음에 얽힌,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슬펐다. 패널로 나온 아주머니들은 그가 말하는 내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반면,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어조는 담담하고 침착했다. 말의 내용도 물론 마음에 와 닿았지만 나는 그 보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울리는 슬픈 이야기들을 저렇게 차분하고 정연하게 풀어내는 그- TV를 통해 처음 본 어떤 의사-에 대해 일종의 경탄심이 느껴졌고, 앞에서 말을 하고 있는 그, 한 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그는 내가 알기 전부터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의사를 하면서 겪은 일화들을 소개한 그의 블로그는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그러기를 계속하다 결국 그의 이야기들이 책(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1ㆍ2)으로까지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했음을 알았다. 그런데 그가 경제 분야의 책도 썼단다. 비문학 책은 어지간해선 보지 않는 나지만, 그가 썼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어 이 책을 구해 읽게 되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나는 경제학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과연 이 시골의사가 경제 관련 책을 잘 썼을까, 잘 썼으면 샘이 날 것이고-의사가 경제까지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 못 썼으면 조금 실망하는 한편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의사가 경제분야까지 해박하게 알겠어 하는 일종의 안도를 느끼고 싶어 이 책을 일독했다. 읽고 난 후 느끼기를, 책을 참 잘 썼다, 그런데 샘이 나지는 않는다. 기대와는 다른, 그렇지만 긍정적으로 다른 그런 책이었다.

그가 경제에 대해 보통 사람들보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경제-특히 투자에 관련된-에 대해 그가 이해하고 있는 바가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제목에서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는 사람들이 재테크에서 성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과감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는 결론적으로 사람들-중산층 이하의 평범한-에게 재테크를 통해 부(富)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허황된 생각이다, 돈을 많이 갖고 싶다면 돈놀이 해서 편하게 돈 벌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가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도록 본인에게 투자를 하라, 이런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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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뛰어난 사람들의 생각을 접함은 좋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습득만으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깨침이 있어야 한다. 저자가 책의 끝 부분에서 면벽수행을 하고 책을 불사르는 선승들을 예로 들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있게 와닿았던 내용이다. 이 비문학 서적이 나에게는 수필 같은 문학적 느낌으로 기억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삶과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사는 또 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이 시골의사를 통해 다시 한번 이 세상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Posted by m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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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되는대로 주저리주저리 할 줄도 알아야 해.
나는 너무 진지한 거 아니야. 특히 글을 대할 때는 지나친 사명감에 젖는 것 같아.
아, 그냥 우울하다, 이런 류의 직접적인 표현도, 누군가가 보면 부끄러울 것 같다, 아니면 에이, 그냥 집어치우자, 뭐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필요없이 그냥 한번 뱉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아직까지도 나를 꿰뚫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거니.

직업과 소명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무엇을 하든, 아니 무엇을 하든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을 할 때 나는 이 일을 하는 게 내 직업이자, 이 일이 내 소명이다, 하는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쉽게 될 줄 알았는데, 오늘 잠깐 시도해보니 그렇게 쉽지는 않다. 진짜 어려운 일은 쉬울 듯 하면서 잘 되지 않는, 비유를 하자면 보일 듯 하면서 보이지 않고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그런 일이 아닐까 한다. 아예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데 그것을 꼭 잡아야한다면, 일단 그것이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길을 걸으면 된다. 그것이 보이면 그것을 향해 걸어가면 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가까워 보이던 그것이 마법의 성처럼 가도가도 다가가지지 않는다. 계속 걸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걸음을 멈출 수는 없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상한 상상도 들고 마음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여기서 또 자학적인 말들을 내놓음으로서 속으로 음흉하게 만족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직업과 소명이다. 나는 그렇게 있을 것이다. 빵집 아저씨가 밀가루를 사서 반죽을 하고 빵을 만들고 굽는 것처럼,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야지.

어떻게 하면 상투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투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일이 가끔 필요하다.

Posted by m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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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축구를 좋아했었다. 커가면서 차츰 운동을 멀리하게 되었고, 지금은 지금은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즈음까지는 축구를,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어도 적어도 보는 것은 좋아했다. 텅빈 관람석으로 둘러싸인 황량하게 펼쳐지는 고교리그도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다.

지금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2006 월드컵 때는 우리나라 경기도  보지 않았다. 그동안 내 성향이 변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내가 축구를 좋아하지 않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2 월드컵 때 있었다. 당시에, 축구를 원래 좋아하던 사람이든 축구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사람이든 정말 '온 국민이 하나되어' 월드컵이라는 세계 축구대회에 열광했었다. 나 또한 열광하며 월드컵을 시청했지만, 이상하게도 한편으로는 평소에는 축구에 한치의 관심도 두지 않다가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하니까 갑자기 원래 축구 광팬이었다는 듯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 때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같이 좋아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나는 은연중에 생각했나 보다. 나는 원래부터 축구를 좋아했으니 그들과 같을 수 없다, 뭐 이런 생각.

그런데 실상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비슷했다. 올림픽 마라톤을 할 때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할 때 나는 손에 땀을 쥐고 집중해서 시청했다. 평소에는 마라톤과 쇼트트랙에 하등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 연장, 또 연장에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아찔함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까지 더해 한순간도 TV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그 때 TV를 보는 일이 애국하는 일이라는 느낌까지 가졌던 것 같다. 2002 월드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비록 졌지만 최고의 경기를 보여준,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은 당시에 국민들의 사랑을 한껏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 경기를 보기 이전에 핸드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그것이 끝난 이후에도 핸드볼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테네 올림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여자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은 한편으로 국민들에게 얄미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오히려 서러웠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관심과 성원 때문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그동안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고생했던 일,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길을 걸으며 느꼈던 의회감과 두려움이 기억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고 조금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 예전과 같아질 것임을 알기에 서글퍼 했을 수도 있다.

비단 핸드볼 뿐만은 아니다. 축구, 농구, 야구 등 몇몇 인기 종목을 제외하고 올림픽에서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종목과 그 선수들은 올림픽 기간이 아닌 때에는 사람들로부터 주목 받지 못한다. 스포츠(프로 스포츠)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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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면 지켜보는 관중들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올림픽을 볼 때, 어느 종목이든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올림픽에까지 출전할 정도의 선수면 뭔가 있을 것 같다. 아무려면 보통 사람보다는 낫게 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처럼 정말로 어제의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가 오늘은 할인마트에서 야채를 팔고 있을 수도 있고 빚쟁이들한테 빚독촉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비주류 운동경기를 올림픽 기간이 아닌 평상시에도 사랑합시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영화를 통해 그동안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이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았다. 감독은 우리에게 그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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