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7.08.23 여자 없는 남자들 1
  2. 2009.05.09 똥파리
  3. 2008.02.17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4. 2008.01.26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5. 2007.12.08 김현식

여자 없는 남자들

낙타 2017. 8. 23. 01:34

 

 

책을 읽기 전에는 특별히 일관성 없는-있더라도 약한 정도로 있는-단편집인줄 알았다. 그런데 끝까지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 그것은 '불륜'이었다. 물론 그 일관된 흐름이라는 것을 '불륜'이라는 단어 하나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 '불륜'이라는 객관적인 행위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어떤 감정에 관한 것이다.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는.

 

(그런데 사실 7개의 단편들-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셰에라자드, 기노, 사랑하는 잠자, 여자 없는 남자들-중 하나가 흐름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다. '사랑하는 잠자'가 그렇다. 아마 원래의 일본어판 책에는 '사랑하는 잠자'는 빠져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책띠에 "한국어판 특별 수록 '사랑하는 잠자'"라는 기재가 당당하게 인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잠자'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아마 하루키는 일종의 실험정신으로 이 단편을 써본 것 같다. 아무튼 '사랑하는 잠자'는 책 전체의 일관성을 해치고 있다. 고급스러운 재즈바에서 쌩뚱맞게 갑자기 네오펑크가 나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덧붙이자면, 나는 네오펑크 음악을 좋아하고 고급스럽지 않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이것이 빠지고 6개의 단편만 실린 소설집이었다면 책 전체의 완성도도 더 높았을 것이며 훨씬 아름다운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집에 '사랑하는 잠자'가 들어간 것은 출판관계자의 실수 또는 졸속적인 업무처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덧붙이자면, '사랑하는 잠자'는 그 자체로는 꽤 훌륭한 단편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잠자'를 뺀 나머지 6개에 관한 것이다.)

 

6개의 단편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아직 읽은지 얼마 안 되었으므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것은-'기노'이다. '기노'는 '기노'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기노는 업무차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예정보다 하루 일찍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아내와 한 남자-기노가 회사에서 제일 친하게 지내던 동료였다-가 벌거벗은 채 침대에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내가 쪼그려 앉은 자세로 위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에 기노는 문을 열었을 때 아내와 정면으로 얼굴을 맞닥뜨렸다. 기노는 여행가방을 도로 멘 채 집을 나왔고, 다음날 회사도 그만두었다.

 

이후 기노는 이모의 집을 빌려 거기서 작은 술집을 운영했다. 가게 이름은 자신의 이름과 같은 '기노'로 정했다. 그러면서 아내와의 이혼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는 동안 기노의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무덤덤했다. 아내와 그 남자에 대한 분노나 원망도 일지 않았다. 그냥 원래부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였다. '기노'라는 술집에서 기노는 편안함을 느끼면서 지냈다. 아름다운 회색 길고양이가 '기노'를 찾은 이후 그곳에 손님이 들기 시작했고, 매달 임대료를 낼 정도 이상의 매상을 올리며 만족할만한 생활을 했다. 가게에서 손님과 시비가 붙은 적도 있고 손님으로 온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도 있지만, 기노의 생활을 흔들어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는 와중에 아내와의 이혼이 정식으로 성립되어 기노는 아내를 만났다. 기노는 무덤덤하게 아내를 만났고 지난 일을 캐묻지도 않았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되자 '기노'에서 고양이가 사라졌고, 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기노는 한 단골손님의 말을 듣고 여행을 떠난다(그 손님은 기노에게 기노가 무언가 옳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는 등의 말을 하고 자신이 기노의 이모와 아는 사이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기노에게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가미타'라는 이름을 가진 그 손님의 말에는 논리를 뛰어넘은 신비한 설득력이 있었다. 합리적인 이유는 없었다. 기노는 '그냥' 그 가미타의 말을 믿기로 했다).

 

구마모토 역 근처의 싸구려 비즈니스호텔에서 묵고 있을 때 기노는 기묘한 경험을 한다. 깊은 새벽(이라고 해야할지 깊은 밤이라고 해야할지 애매한 오전 두시 십오분) 누군가가 기노의 방문을 노크한다. 간결하고 단단하며 규칙적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노는 깨달았다. 그 노크가 방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대한 것임을. 기노는 따스함을 느끼며 생각한다.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그것도 몹시 깊게 그러했음을.>

 

나머지 5개의 단편들도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불륜-최소한 불륜적인 어떤 것-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나 역시 '불륜적인 어떤 것'에 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이 정도로 완화된 표현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이상의 것을 위한 용기와 결단은 아직 나에게는 없다(이건 또 뭔 X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말일 것이다)). 하긴 어쩌면 이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불륜적인 어떤 것에 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렇게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을 적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떤 일을 당했는데-혹은 겪었는데-나는 내가 그것으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거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후려쳐서 말하면, '내가 왜 그깟일에 연연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나는 사실은 그 일을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신경이라는 것은 대체로 의식의 표면 아래에 있는 것 같다. 표면 위로 드러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표면 아래의 부분이 더욱 커지는 것이기도 하다.

 

말은 쉽다. 그렇지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을 '별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실제로는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매우 어렵다. 평생 동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때때로 실제로는 '별것'인 것을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은 자기보호본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정말 '별것'이라면 나는 너무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일단 그것을 별것 아닌 거라고 치부하자. 하는 식으로.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러한 사고방식은 더 큰 상처나 화를 불러온다. 그것은 덮어놓는다고 없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덮어놓으면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이다. 언젠가는,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의식의 표면 위로는 끌어올려 정면으로 응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서야 그것은 사그러들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불륜 또는 '불륜적인 어떤 것'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나는 최근에 나름대로 내 안에 묻혀 있던-또는 묻어 두었던-몇가지를 의식의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시도했었다. 그리고 흡족해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었던 것 같다(몇가지 이유가 있어서 내가 시도했던 방법을 여기에 적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그 방법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문의를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불륜은 인류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내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 중 상당수도 그러할 것이다.

 

▶ 그래서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라고 묻는다면 나는 곤란하다. 나는 그냥 이 책에 관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나서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어설픈 글이나마 남겨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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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낙타 2009. 5. 9. 23:49

이천육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행정병으로 군복무 중이었던 나는 낡은 사단 건물의 사무실에서 문서작성을 하고 있었다. 아침 마다 화학대의 방역차가 부대 안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소독약을 뿌려댔지만, 파리들은 그 때 높은 곳에서 그 장면을 내려다 보며 비웃었나보다. 건물 안팎을 가릴 것 없이 파리가 정말 많았다. 나는 컴퓨터 옆에 파리채를 두고 수시로 파리를 잡아가며 업무를 하였다. 어느 순간 모니터에 파리가 앉았다. 파리를 수도 없이 잡아본 나는 익숙한 솜씨로 파리를 내리쳤다. 파리 몸통이 박살나 지저분하게 피튀기며 흩어질 정도로 강하지도 않으며 파리가 안 죽고 살아날 정도로 약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정도의 강도, 경험칙상으로 보건대 분명 파리가 형체를 유지한 채 깔끔하게 죽어야할 정도의 강도로 정확하게 가격했다. 그런데 그 파리가 죽지 않고 날아갔다. 나는 순간 강한 의아함을 느꼈다. 죽어야할 파리가 죽지 않고 살아서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파리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는데, 그 길이가 그리 길지는 않았다. 파리는 일미터 쯤을 날고 나서는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 때야 비로소 죽은 것이다. 나는 그 파리를 보며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다. 파리도 의지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타격을 맞은 파리가 날고 싶다는, 아니 살고 싶다는 강한 본능 때문에 그 순간 남아있던 온 힘을 쏟아 그 일미터를 날아낸 것은 아닌가.

영화에서 똥파리(상훈)는 아버지를 개 패듯이 팬다. '아버지의 귀두'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무언가가 뜨뜻미지근하게 뒤엉킨 느낌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영재에게 망치로 머리를 수십차례 두드려맞고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스러져 죽어가는 상훈의 모습을 보면서 든 느낌이나, 중학교 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싸움 도중 사람의 눈알이 터지는 장면을 보고 어린 마음에 토악질이 나오려 했을 때 보다도 훨씬 선명한 느낌의 충격이 밀려왔다. '충격'이라기 보다는 '기묘'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 같다. 예전 누군가의 영화나 소설 속에서, 혹은 현실에서 이미 있었던 일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광경을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하나의 금기가 깨어졌음을 비로소 확인한 것이다.

상훈이 연희와 조카 형인이를 데리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즐거워하는 장면은 특이한 기법으로 촬영되었다. 동물의 시선 - 똥파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특이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영화 제작에 관하여서 문외한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상훈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다. 어지러웠다. 그는 즐겁게 살아서는 안되는 운명을 지고 있다고 보였다.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은 한편으로 커다란 불안감을 자아냈다. 그 행복이 곧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낯선 것, 혹은 이루고 싶은 것이다.

영재는 누나인 연희가 돈을 주지 않자 연희의 교복을 찢어버리겠다며 연희를 위협한다. 위협이다. 연희는 영재가 손에 쥔 교복을 빼앗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연희는 거의 매일 지각을 하고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꿋꿋이 학교를 다닌다. 연희는 학교를 다니고 싶어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양아치 동생에게 치이며 집안 살림을 이끌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삶이 벅찬 연희에게, 학교를 다니는 것은, 교복을 입는 것은 커다란, 어쩌면 삶에서 유일한 기쁨이다. 상훈이 뱉은 침이 그의 교복에 묻었을 때, 그 무섭게 생긴 건달에게 당돌하게 대들 수 있었던 힘도 여기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똥파리는 죽으면서 사랑을 남겼다. 연희의 눈물, 어린 형인의 눈물, 친구 만식의 눈물, 누나의 눈물, 아버지의 눈물. 상훈을 사랑하던 이들의 눈물이었다. 용역 깡패 사장이었던 만식이 고깃집을 개업한 날 이들이 모두 모인다. 남들과 같은, 보통의 가정을 갖지 못한 이들의 모임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들은 함께하는 기쁨을 갖는다. 모두 상훈이 사랑하는 이들이다. 상훈이 '개 패듯이' 팼던 그의 아버지도 상훈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왜 살까. 정말 추상적이고 상투적이고 막막한 질문임을 안다. 그리고 사람들 마음 속에 저마다의 그림이 있을 줄을 안다. 비록 밖으로 표현하지는 못할지라도, 선명하지 않아서 스스로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지라도 모두들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삶의 가장 큰 의미는 모두가 아기일 적에 이미 알았을 수도 있다. 성장하고 늙어감은 이미 아기일 때 자신이 알았던 것을 다시 알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두 번째의 깨달음은 깨달음이 끝이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오히려 깨달음은 시작이다. 똥파리는 왜 살았을까. 왜 살고 싶어 했을까. 나는 지금까지 왜 살아왔을까. 나는 왜 살고 싶어할까. 영화는 이 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유도하고 넌지시 나름대로의 해답을 암시한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내가 잡았던 그 파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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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아침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의사가 자신이 의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기억에 남는 일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코너를 보았다. 삶과 죽음에 얽힌,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슬펐다. 패널로 나온 아주머니들은 그가 말하는 내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반면,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어조는 담담하고 침착했다. 말의 내용도 물론 마음에 와 닿았지만 나는 그 보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울리는 슬픈 이야기들을 저렇게 차분하고 정연하게 풀어내는 그- TV를 통해 처음 본 어떤 의사-에 대해 일종의 경탄심이 느껴졌고, 앞에서 말을 하고 있는 그, 한 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그는 내가 알기 전부터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의사를 하면서 겪은 일화들을 소개한 그의 블로그는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그러기를 계속하다 결국 그의 이야기들이 책(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1ㆍ2)으로까지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했음을 알았다. 그런데 그가 경제 분야의 책도 썼단다. 비문학 책은 어지간해선 보지 않는 나지만, 그가 썼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어 이 책을 구해 읽게 되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나는 경제학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과연 이 시골의사가 경제 관련 책을 잘 썼을까, 잘 썼으면 샘이 날 것이고-의사가 경제까지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 못 썼으면 조금 실망하는 한편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의사가 경제분야까지 해박하게 알겠어 하는 일종의 안도를 느끼고 싶어 이 책을 일독했다. 읽고 난 후 느끼기를, 책을 참 잘 썼다, 그런데 샘이 나지는 않는다. 기대와는 다른, 그렇지만 긍정적으로 다른 그런 책이었다.

그가 경제에 대해 보통 사람들보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경제-특히 투자에 관련된-에 대해 그가 이해하고 있는 바가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제목에서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는 사람들이 재테크에서 성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과감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는 결론적으로 사람들-중산층 이하의 평범한-에게 재테크를 통해 부(富)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허황된 생각이다, 돈을 많이 갖고 싶다면 돈놀이 해서 편하게 돈 벌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가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도록 본인에게 투자를 하라, 이런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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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뛰어난 사람들의 생각을 접함은 좋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습득만으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깨침이 있어야 한다. 저자가 책의 끝 부분에서 면벽수행을 하고 책을 불사르는 선승들을 예로 들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있게 와닿았던 내용이다. 이 비문학 서적이 나에게는 수필 같은 문학적 느낌으로 기억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삶과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사는 또 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이 시골의사를 통해 다시 한번 이 세상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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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축구를 좋아했었다. 커가면서 차츰 운동을 멀리하게 되었고, 지금은 지금은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즈음까지는 축구를,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어도 적어도 보는 것은 좋아했다. 텅빈 관람석으로 둘러싸인 황량하게 펼쳐지는 고교리그도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다.

지금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2006 월드컵 때는 우리나라 경기도  보지 않았다. 그동안 내 성향이 변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내가 축구를 좋아하지 않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2 월드컵 때 있었다. 당시에, 축구를 원래 좋아하던 사람이든 축구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사람이든 정말 '온 국민이 하나되어' 월드컵이라는 세계 축구대회에 열광했었다. 나 또한 열광하며 월드컵을 시청했지만, 이상하게도 한편으로는 평소에는 축구에 한치의 관심도 두지 않다가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하니까 갑자기 원래 축구 광팬이었다는 듯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 때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같이 좋아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나는 은연중에 생각했나 보다. 나는 원래부터 축구를 좋아했으니 그들과 같을 수 없다, 뭐 이런 생각.

그런데 실상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비슷했다. 올림픽 마라톤을 할 때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할 때 나는 손에 땀을 쥐고 집중해서 시청했다. 평소에는 마라톤과 쇼트트랙에 하등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 연장, 또 연장에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아찔함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까지 더해 한순간도 TV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그 때 TV를 보는 일이 애국하는 일이라는 느낌까지 가졌던 것 같다. 2002 월드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비록 졌지만 최고의 경기를 보여준,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은 당시에 국민들의 사랑을 한껏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 경기를 보기 이전에 핸드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그것이 끝난 이후에도 핸드볼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테네 올림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여자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은 한편으로 국민들에게 얄미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오히려 서러웠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관심과 성원 때문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그동안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고생했던 일,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길을 걸으며 느꼈던 의회감과 두려움이 기억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고 조금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 예전과 같아질 것임을 알기에 서글퍼 했을 수도 있다.

비단 핸드볼 뿐만은 아니다. 축구, 농구, 야구 등 몇몇 인기 종목을 제외하고 올림픽에서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종목과 그 선수들은 올림픽 기간이 아닌 때에는 사람들로부터 주목 받지 못한다. 스포츠(프로 스포츠)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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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면 지켜보는 관중들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올림픽을 볼 때, 어느 종목이든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올림픽에까지 출전할 정도의 선수면 뭔가 있을 것 같다. 아무려면 보통 사람보다는 낫게 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처럼 정말로 어제의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가 오늘은 할인마트에서 야채를 팔고 있을 수도 있고 빚쟁이들한테 빚독촉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비주류 운동경기를 올림픽 기간이 아닌 평상시에도 사랑합시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영화를 통해 그동안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이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았다. 감독은 우리에게 그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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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낙타 2007. 12. 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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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을 좋아한다. 나는 그가 죽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를 알았다. 그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가 사라졌음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처음으로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이란 걸 해본 날이었다. 아홉시 반이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지나 TV를 켰는데 어떤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RNA라는 제목의 드라마였는데 지금은 그것이 공포물이었고 배두나와 김원준이 출연했었다는 정도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또 기억에 남는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그 드라마에서 나온 노래다. 지금 생각해보면 워낙 유명한 노래라 그 전에도 들어봤을 법한데 기억에 의하면 내가 그 노래를 들은 건 그 때가 처음이다. 비처럼 음악처럼 이라는 노래다. 나는 그 노래가 너무 좋아 인터넷으로 그 노래에 대해 알아보았고 그 곡을 부른 가수가 김현식이며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점이 내가 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든 것 같다. 사람은 가고 그 목소리만이 남아 듣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불어 일으키는 현상에서 나는 일종의 신비감을 느꼈다. 이는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김광석이나 유재하도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추모하는 것이고 Jeff Buckley는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전설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Nirvana와 Pearl jam의 경우를 보면 이런 현상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Nirvana와 Pearl jam은 둘다 1990년대 초에 Alternative Rock이라는 장르의 음악으로 미국 대중음악계를 선도하던 락그룹이다. 그 당시에는 두 그룹이 비슷한 정도의 인기몰이를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Nirvana가 훨씬 더 많이 기억되고 재조명 되곤 한다. 이는 Nirvana의 리더 Kurt Cobein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이문세도 좋아한다. 이문세는 지금도 살아있는 가수다. 김현식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이문세와 비슷한 나이일 것이다. 나에게 이문세의 이미지는 양화이고 김현식의 이미지는 음화인데 이는 그들의 삶과 음악의 스타일에서 기인한 바도 있지만 그 보다 그들의 생사여부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나에게는 양화보다 음화가 더 깊고 큰 의미를 갖는다. 양화는 따스한 햇살과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떠오르게 하는 반면 음화는 텅빈 방과 어둠,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게끔 만든다.

알고보니 김현식은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꽤 유명한 가수였다. 내사랑내곁에 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서 익히 알고 있던 노래였고 사랑사랑사랑 과 봄여름가을겨울 도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또 전에 어떤 단편 드라마에서, 난치병을 선고받고 병원에 입원중인 어떤 가수가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너무 강해 몰래 병원에서 탈출해서 공연을 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다 몸 상태가 악화돼 결국 생을 마감한, 그런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김현식의 이야기였음도 알게 되었다.

나는 김현식의 거의 모든 노래를 찾아 들었는데 하나같이 내 마음을 울렸다. 그의 노래는 슬프다. 나는 그 슬픔이 좋았다. 그것은 마음 속 아주 깊숙이 있는 어떤 응어리를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김현식의 목소리는 전인권과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둘의 목소리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데, 들었을 때 김현식의 목소리는 거칠면서도 그윽함을 가지고 있으며 전인권의 것보다 더 큰 '한'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 '한'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부합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고 오늘 날까지도 그가 추모되고 있으며 그의 노래가 리메이크 되어 다시 불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있는 노래가 좋다. 일전에 박진영이 모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민족적 정서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데 대해 비판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사람들의 지적에 따라 자신의 음악에 국악을 크로스오버하는 등 민족적 색채를 담아보려 노력해 봤지만 이상한 음악만 만들어졌고 그런 노력이 결국 허사였다고 말했다. 자신의 음악은 미국 스타일이고 음악은 각각 저마다의 특성이 있으니 대중들이 자신의 그런 특성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또 굳이 자신의 음악이 아니어도 한국적 특색을 가진 음악은 많으니 꼭 자신에게 그런 요구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이 그의 발언의 요지였다. 꽤 일리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말에 동감하지 않는다. 그는 '민족' 정서 내지 '한국적'이란 말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음악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라고 할 때 그것이 꼭 국악이나 판소리에서 느껴지는 그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우리 민족의 정서에 대해서 분석한 바 있는데 그들의 의견을 '한'이라는 단어 하나로 축약해도 크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악에서 인간 내면의 '한' 내지 억압에 대한 저항이 느껴진다면 나는 그 음악에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오는 발라드 음악에서도 그것이 느껴지고 홍대 클럽에서 공연되는 인디밴드들의 펑크나 하드코어 음악에서도 그것이 느껴진다. 누군가 박진영에게 그의 음악에 한국적 색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을 때 그것은 그의 음악의 음계나 쓰이는 악기 또는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한 게 아니라 음악의 주제와 깊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김현식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울분과 깊은 곳에서 비롯된 슬픔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부르는 노래는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동경하면 그 사람을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김현식을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침 우리 집에는 기타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아무도 사용하거나 손보지 않아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강좌나 악보들을 보며 기타를 연습했는데 원체 기타도 좋지 않은데다가 옆에서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진도가 나가지를 않았다. 김현식을 좋아하고 따라하고 싶은 마음은 강했지만 나의 의지력과 집중력이 약한 탓인지 기타를 익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학원을 한 달 정도 다녀보기도 했지만 내가 너무 게으름을 좋아하기도 해서 지금까지도 나의 기타 실력은 기본적인 코드나 몇 개 짚을 줄 아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못치는 실력으로나마 기타로 반주를 하며 김현식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김현식의 수기를 읽어보면 그가 방황하던 시절에 돈이 부족해 길거리에서 어린 아이들을 위협해 돈을 빼앗기도 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김현식을 너무나 동경한 나머지 그의 그런 범죄 행위까지도 멋있게 보았고 나도 그런 깡패짓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얼핏 들었다. 물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여하간 나는 여기서 내가 그가 한 행동이라면 그것이 범죄일지라도 동경할 만큼 그를 좋아했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최근에 김현식의 노래가 많이 리메이크 되었다. 누군가의 정규 음반에 수록되기도 하고 컴필레이션 형식으로 그의 리메이크 음반이 발매되기도 하였다. 김현식이 죽고 나서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좋은 일이지만 이상하게 나의 심술궂음이 발현된다. 가끔 김현식을 나만 알고 좋아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소유욕에서 비롯된 마음일까. 나는 그것을 심술궂음이라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때로는 리메이크가 원곡의 진가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도 든다. 나에게는 그 어떤 리메이크 곡도 그가 부른 원곡보다는 못하게 들린다. 아무리 더 세련되게 편곡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김현식의 인생은 술과 음악을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는 지독히도 술과 음악에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술을 너무나 많이 마신 탓에 건강이 악화돼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으며 죽기 직전까지도 혼신의 힘으로 노래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자신의 생명이 거의 다 닳았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음악과 술에 대한 집념을 놓지 않았던 그의 삶은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을 연상케 한다. 지독한 외로움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아니면 가정의 불화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가 그보다 더 원초적인 문제 때문에 끊임없이 고뇌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태초이래 계속 이어져 온, 인간의 본질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고민이리라. 어쩌면 사람이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답은 신의 영역에 있을 듯 하다. 문제는 그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하는가 하는, 저마다의 고민의 정도에 있다. 김현식의 고민은 너무나 커서 고민이라기 보다 고뇌였고 그 때문에 그의 마음은 늘 괴로웠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끝없이 노래하고 음악을 만들었으며 마음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셨다. 그러나 그러는 것이 그의 고뇌를 지워주지는 못했다.
신체 어느 부위가 몹시 가려운데 이상하게도 도저히 그 정확한 부위를 찾아낼 수 없을 때가 있다. 가렵다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서 긁어도 전혀 시원하지가 않다. 이곳저곳 긁어보다가 가려운 곳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가려움이 견딜 수 없을 정도에 이르면 문제는 심각하다. 가려운 곳을 긁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가 없어 어딘가를 계속 긁는데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김현식은 자신의 괴로움을 음악과 술로써 달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운명은 술과 음악 외에 다른 것을 그에게 제시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이 자신의 괴로움을 달래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괴로움을 견딜 수가 없어 술과 음악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 때문에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있음을, 죽음이 앞당겨져 옴을 알면서도.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조금 미심쩍은 면도 있다. 김현식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독실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는 분명 기독교 신자였다. 그가 쓴 시 중에는 하나님께 고백하는 내용의 글도 있다. 얼핏 생각했을 때 그와 기독교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 술과 어둠을 그렇게나 좋아한 사람이 기독교 신자였다니.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여기서 고백하건데 내가 교회에 다니게 된 데에는 김현식의 영향이 컸다(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이 글을 쓸 당시에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가 교회에 다녔다고 하니 교회가 어떤 곳인지 궁금한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대학교 일학년 때 처음-엄밀히 처음은 아니다. 국민학교 시절에 별다른 인식없이 주위 분위기에 이끌려 한 동안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으로 교회에 갔고 지금까지도 다니고 있다-그러나 그 이유가 전적으로 김현식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밝히지는 않지만 다른 더 큰 이유도 있었다. 어쨌든 김현식이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김현식이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다녔는지, 어떤 신앙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는 교회를 통해 어떤 경험을 했을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과 비슷했을까.

어둠그별빛, 밤의고독에서, 도시의밤, 넋두리, 슬퍼하지말아요, 눈내리던겨울 밤, 떠나가버렸네, 한국사람, 그리고 그 외에 지금 머릿 속을 스쳐가는 여러 곡 들. 김현식은 어둠과 외로움에 관한 노래를 많이 했다. 그는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고독한 사람을 위로했었다. 아니, '했었다'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그의 음악과 목소리는 지금까지도 남아 많은 고독한 이들을 위로하고 있으며 나도 그 위로받는 이들 중 한 사람이다. 나는 사춘기 시절을 그와 함께 했고,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이 글을 통해 고백한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행여나 김현식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이 글을 읽었을 때 불쾌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m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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