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성냥 2017. 3. 12. 16:28

글이 아니라면. 그림이나 음악이라면.
나는 어떤 표현을 할까.
어떤 화가가 그린 소녀의 옆모습을 좋아한다.
시간이 흘러야 생기는 깊이도 있는 것 같다.

눈물이 말랐다. 눈빛도 흐려졌다.
슬픈 동물처럼 거리를 걸었다.
나는 언제고 갇힌 채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마치 누군가의 처분을 기다리듯이 살아왔다.
나에게는 처분권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나에게 처분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이는 소녀의 옆모습이 슬퍼 보인다고 했다.
나는 소녀의 옆모습은 슬프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는 소녀가 먼 곳을 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오래 소녀를 바라보았다.


2016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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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2017. 3. 12. 16:26

너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어
작고 보드라운 하얀 고양이
귀여운 아기 고양이

나에게 넌 고양이였어
너는 커다란 도시에서 단 하나뿐인
작고 아늑한 공간에 숨어 있었어

도시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나는
아주 이상한 이끌림에 의해서
너의 공간을 발견했어
너와 고양이가 있던 그 작고 예쁜 곳

너는 고양이를 귀여워했어
나는 너를 귀여워했어
나는 행복하면서 불안했어

작고 평화로운 너의 공간을 없앤 건 나였어
나는 지금도 그곳이 그대로일 것 같아
따스한 그곳에 고양이와 너가 있을 것만 같아


2016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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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성냥 2017. 3. 12. 16:24

청춘일 때, 나는 청춘을 알지 못했다.
이제 청춘을 아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청춘이 아니기에.
청춘을 청춘답게 살았더라면 나는 어떠했을까.
자연이 준 아름다움에 그저 나를 맡겼더라면.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쥐어짜듯 애를 써서 가끔 시를 쓴 적이 있을 뿐이다.

나의 청춘은 아직 그곳에 남아있지만,
나는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의 청춘은 잘못됐다.

다만, 이제 청춘을 알기에, 청춘을 논할 수 있다.
청춘의 본질은 깊음이다. 청춘은 깊은 바다와도 같다.
청춘은 성숙하다. 청춘을 지난 것보다.
청춘은 지혜롭다.
청춘은 너그럽다.
청춘은 관대하다.
청춘은 자비롭다.

청춘이 있어서 세상이 있는가보다.


201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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